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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여행

안동의 병산서원을 가다 ~

2012년 10월 13일(토)

안동시 소재 하회마을의 황토방에서 1박2일 법회겸 다과모임이 있어 참석한뒤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에 가까이 있는

류성룡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던곳 " 병산서원을 찾았다.

병산서원의 고풍스러움과 주변경관의 아름다움, 조화로움이 날 행복하게 한다 ~

■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던곳. 류성룡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 되어 있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의 제자들과 유림이 뜻을 같이 하여, 서원 안에 사당(존덕사)을   세우고 위패를 모셔서 선생의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며 향사(제사)를 올리던 서원입니다.

 

병산서원이 설립된 유래

 

고려 때, 안동의 풍산현에 풍악서당이 있어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고려말, 공민왕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무렵, 그곳 풍악서당에서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호패와 땅)을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 하였습니다.

이후, 약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 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것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서애 류성룡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였기에 유림들은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였다고 합니다.

서애선생께선 그 문의를 듣고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 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572)

임진왜란으로 불에탄 서당을 다시 중건하였고(1607), 사당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서원이 되었습니다.(1610)

그후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병풍을 둘러친 듯하여 '병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화산을 등지고 앞으로 낙동강이 백사장과 함께 굽이쳐 흘러 가고 그 투명한 푸름은 소나무의 짙푸름과 서로 다투는 듯

조화롭습니다.   만대루에서는 주변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입교당 에서는 자연과 조화된 병산서원의 미(美)를

더욱 느낄 수있습니다.